연초부터 이슬람 국가를 중심으로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권력에 짓눌려 힘없이 그저 순순히 복종하던 민초들이 폭발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 호시니 무바라크 대통령과 그의 일가(一家)다.
81년 이집트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30년간 독재자로 8천만 이집트인을 군림했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관광자원 등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나라로 선진국에 가입할 만한 제반 요건을 갖췄지만, 무능한 국정운영으로 국민을 억압하고 가난으로 몰았다.
결국, 무바라크는 지난 2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니, 쫓겨났다. 아들과 친정부 세력은 모두 구속 수감 중이다. 무바라크는 구속을 앞두고 있다. 30년 권력이 하루아침에 수감자 신세로 전락했다.
서론이 길었다. 태권도계도 무바라크와 같은 인물이 있다. 같은 해 81년, 경기도태권도협회 전무이사로 입성한 안 모 전무이사를 말한다. 그는 오늘까지 30년간 국내 최대 시도태권도협회 실세로 군림해왔다.
경기도협회는 산하 31개 시·군에 1천2백여 회원 도장과 350여 초중고 태권도팀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다. 이는 개인의 단체가 아니다. 공공의 단체다. 회원 누구에게나 동일한 조건으로 지원해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 30년 동안 경기도협회를 개인의 사조직처럼 운영했다.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만 ‘감투’를 줬다. 눈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자리를 빼앗고 내쳤다. 기득권에 빌붙어 기생하는 소인배들도 문제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하는게 공통적인 특징이다. 어쩌면, 이들이 기득권의 철옹성을 구축하는 주범이다.
수많은 경기도 내 소속 지도자들은 협회의 무원칙, 무개념 행정에 염증을 느껴왔다. 하지만, 침묵했다. 잘못된 행정과 정책에 반기를 드는 순간,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도장운영, 승품·단심사, 대회출전 여러 부문에서 보복행위가 이뤄진다.
부정부패와 권력을 일삼는 국가는 국민이 편안하지 못하다. 태권도 단체도 마찬가지다. 그 아래에서 도장을 하는 지도자는 눈치 보느라 도장운영에 전념할 수 없다. 그래서 떠난다. 무개념 원칙의 도장등록비와 보복성 승단심사 등의 이유로 ‘비등록 도장’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맑고 좋은 생명수라도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선진국은 임원의 임기를 ‘중임제’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부정부패와 기득권 형성 등을 막기 위해서다. 공공단체는 봉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라면, 중임제로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 또한, 선거방식 역시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권력화를 견제할 수 있다.
경기도협회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는 ‘경영공시’를 통해 회원들에게 정확하고, 투명한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당연히 의무화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특정 기득권층에 한해 운영되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전국 16개 태권도시도협회 중 절반 이상이 특정인이 10년 이상 기득권을 잡고 좌지우지하고 있다. 앞으로 제2의 안 모씨가 나올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불쾌한 감정을 갖는 시도협회 관계자라면, 이 글에 해당한다. 화를 내기 이전에 자신들의 지난 모습을 되돌아 보길 바란다.
또, 자신이 제도권 핵심의 태권도 전문가랍시고 “태권도가 위기입니다. 우리 태권도인이,,,”라고 갖은 폼 잡고 떠들기 전에, 자신이 속해 있는 협회가 어떻게 잘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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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태권도 심판원의 양심이 빛났다. 지갑에 240만원이 든 지갑을 주워 사심 없이 주인을 찾아줬다.
국기원 태권도지도자연수원(원장 송봉섭, 이하 연수원)에서 제8기 3급 경기심판 연수과정 중인 김정한 교육생(광주대, 25)이 그 주인공이다.
김정한 교육생은 지난 20일 국기원 공중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던 중 우연히 240여 만원이 든 지갑을 발견했다. 누군가 실수로 용무를 본 후 떨어뜨리고 간 것으로 짐작했다. 지갑을 어떻게 할까 생각할 시간도 없이 화장실에서 가장 가까운 경비실로 향했다. 지갑 주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 경비실 주변에 다급하게 뭔가를 찾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김정한 교육생은 혹시 지갑을 잃어버렸냐고 물었다. 맞았다. 지갑 주인은 태권도인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지갑을 찾은 주인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경비실 직원은 이와 같은 사실을 연수원에 알렸다.
연수원 방만규 팀장은 “누구나 돈을 주우면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행은 쉽지 않을 것 이다”며 “이번 일은 한 태권도인의 양심적인 행동이 비태권도인에게 태권도인의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교육연수를 위해 연수원에 들른 대한태권도협회 최정호 심판위원장은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적은 금액이 아닌데 대견하다. 이렇게 사심 없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경기장에서 공정한 판정을 할 수 있는 양심 있는 심판원이 될 것 이다”고 말했다.
김정한 교육생은 이번 선행으로 동료 교육생들 사이에 귀감이 되고 있다. 공정한 심판판정을 해야 하는 심판원이 갖춰야할 기본적인 덕목인 ‘양심’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집트에는 25년 전 한국인 유학생에 의해 태권도가 처음으로 보급됐다. 지금은 세계 190여 태권도 회원국 중 10위권 내의 우수한 실력을 자랑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 탓에 파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집트에서 할 일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도시 대부분이 태권도 불모지인 데다가 태권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반면 태권도와 유사한 가라테와 쿵후는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인기가 많은편이었다. 내가 2008년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아스완(Aswan) 역시 마찬가지였다.
50명의 수련생이 400명으로 늘어나기까지
현지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한 내 역할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태권도를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보다 지역 태권도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주민에게 태권도가 무엇인지 알릴 필요가 있었다.
마침 지역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나를 찾아왔다. 아스완은 관광 명소답게 연중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외국인 거주자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 때문에 멀리 떨어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권도’라는 생소한 무술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왔다는 소문은 금방 퍼졌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는 태권도가 무엇인지, 어떠한 장점을 지닌 스포츠인지 방송과 신문을 통해 소개 했다. 곧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정부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클럽과 학교 등을 수시로 방문해 태권도 클럽을 열도록 요청했다. 파견 당시 수련생은 3개 클럽 50여 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현재는 13개 클럽 400여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아스완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축구 같은 인기 종목을 제외한 기타 스포츠 종목은 국가적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태권도 역시 실내 수련 공간이 없어 야외 공터를 이용해야 했다. 게다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한밤중에 어두운 불빛 아래서 수련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유리병 조각에 발이 찢기거나 벌레에 물리는 등 자주 부상을 당했다. 한여름에는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수련생도 있었다. 야외 수련은 집중력이 떨어져서 1시간이면 끝날 과정이 2시간 넘게 걸렸다.
이집트 최초의 ‘꿈의 도장’을 탄생시키다
고민 끝에 KOICA 현장사업으로 태권도장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사업임이 분명했다. 준비 기간만 1년 이상 걸렸다. 마침내 KOICA에 정식으로 현장사업을 요청했고, 어렵게 승인을 받아냈다.
순탄하지 않은 과정이었다. 누군가 건축 자재를 몰래 훔쳐가는가 하면 계약 위반 문제로 경찰서에 불려가거나, 일하던 현장 근로자가 갑자기 잠적하는 등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공사였다.
마침내 지난 4월 28일 이집트 최초로 태권도 훈련장이 문을 열었다. 개관식에는 무려 300여 명이 몰렸다. 작은 도장 개관 행사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윤종곤 주 이집트 대사와 이재웅 KOICA 이집트사무소장을 비롯해 이집트 체육부장관, 주지사 등 여러 관계 기관과 수련생, 학부모 등 수많은 사람이 개관을 축하했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현지 수련생과 학부모들에게서 감사 인사를 받았다. 막연하게 “이곳에 태권도장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아스완은 이제 이집트의 새로운 태권도 메카로 급부상했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속만 태우던 수련생들의 실력은 어느 순간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전에 없던 정부 지원도 확대되었다.
아쉽게도 내 임기는 끝나간다. 그러나 많은 수련생이 새훈련장에서 태권도를 통해 ‘꿈’과 ‘희망’을 키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태권도를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수련에 임하던 아스완 사람들의 눈빛은 나태한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했다. 가르치러 갔지만 배우고 온 것이 더 많다. 인생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가르침을 전해준 이집트의 모든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발행하는 대외 사보 <지구촌 가족> 7월호에 실린 저와 관련된 기고문인 것을 알립니다.
[아스완 꿈의 태권도장 건립기 3 -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직면 - 2009년 11월 2일]
(2편에 이어) 부지가 변경되고 나서 정말 힘겹게 공사가 시작됐다. 공사를 위해 긴 담벼락을 철거하는 공사가 진행됐다. 불도저에서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담벽을 허무는데 그 보다 마음이 시원할 수 없었다. 이튿날 기초공사가 빠르게 진행됐다. 건축물이 들어설 자리에 경계측량을 한 뒤 하얀 백묵으로 줄치기와 기초공사를 위한 가설공사가 시작됐다. 일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마음을 푸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공사가 중단되고 재개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중단(2009년 11월 2일)됐다. 부지를 제공한 수원기관의 또 다른 ‘태클’ 때문이다. 벌써 두 번째다. 정문 위치를 당초 계획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수원기관의 요청대로라면 설계를 전면 수정해야 하고, 이미 진행된 기초공사 역시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공사 중단 사실을 건축주인 내가 알리지 않은 채 시공사 담당엔지니어에게 직접 지시했다.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방해’를 하는 것 같아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이날 오후 클럽 사무실 행정 책임자를 찾아갔다.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사자는 “왜 무슨 일 있느냐”며 태연하게 날 맞았다. “정말 내가 왜 찾아왔고, 왜 화가 나있는지 모르겠느냐”고 따졌다. 역시나 “난 모르겠다”고 일관했다. 더욱 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난 원래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 할 것 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라”고 말했다. 클럽 측은 “우리가 왜 방해하겠는가. 클럽 운영에 맞도록 하려고 했던 것뿐이다”이라며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클럽에서 공사를 중단시킨 이유는 다음과 같다. 태권도장이 들어설 아스완스포츠클럽 구조는 ‘스포츠클럽’과 ‘멤버십클럽’으로 각각 운영되고 있다. 하나의 클럽이지만 별도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포츠클럽은 축구, 농구, 핸드볼, 탁구, 태권도, 가라테, 쿵푸 등 생활 스포츠 및 엘리트 육성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멤버십클럽은 지역 내 주민을 대상으로 클럽에서 문화, 여가 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장소와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멤버십클럽과 스포츠클럽과 다른 점이 있다면 멤버십클럽은 적지 않은 가입비와 연회비를 받는 것이다. 실제 멤버십클럽을 사용하는 주민 대부분은 아스완 지역에서 상류층에 속한다. 일종의 사교장소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클럽의 구조는 멤버십클럽과 스포츠클럽을 사이에 두고 높은 담이 쌓여있다. 멤버십클럽 존은 회원카드를 소지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토록 되어있다. 특히 스포츠클럽 소속 수련생과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차단하고 있다.
클럽 측은 이러한 문제로 태권도장의 위치를 반강제적으로 변경을 요구했다. 클럽 측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태권도장의 위치가 멤버십클럽과 스포츠클럽에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건축을 위해 가로 막혀있던 담장까지 허물었기 때문이다. 클럽 측은 이 것 때문에 향후 멤버십클럽 운영에 미칠 영향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도장이 완공되면 멤버십클럽 회원도 아닌 태권도 수련생과 그 가족들이 출입하게 될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 나아가 멤버십 회원도 아닌 수련생이 클럽에 자주 오고가는 것을 기존 멤버들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수련생들로 인해 멤버십클럽 격이 떨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 멤버십클럽에 회원 일부가 잘사는 사람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수련생들이 왕래한다고 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초의 건축도면. 클럽에서 요구한대로 정문 위치를 변경할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무튼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일이다. 이집트와 지역적인 문화를 알고 나면 왜 그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계급화가 존재한다. 그 기준은 부와 권력, 직업 등이 잣대가 된다. 소위 잘사는 집 자녀들은 바깥에서 놀지 않는다. 어울리지도 않는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신분에 맞지 않는 사람과 어울릴 경우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클럽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태권도장이 다른 스포츠종목과 같이 멤버십클럽 출입문이 아닌 스포츠클럽 출입문을 이용해라는 것이다. 만약 태권도장만 멤버십클럽을 통해 입장하도록 하면 다른 종목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클럽의 정문을 측면으로 옮기고 멤버십클럽에 얼씬도 하지 말고, 보이지도 않게 높은 담장까지 쌓아 라고 까지 했다.
클럽 측에 요구가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운영 목적에 맞추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괜한 오기가 더 크게 발동했다. “부지는 클럽에서 제공했다. 이미 공사가 시작된 상황에서 도면 변경은 어렵다. 멤버십클럽과 차단을 원한다면 관련 비용을 클럽에서 부담하라”고 말한 뒤 “건축주는 분명히 나와 대한민국 정부이지 클럽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고용한 엔지니어에게 공사를 해라 말아라 할 권리가 없는 것 아닌가. 오버(월권)하지 말라”고 강경하게 요구했다.
실제 이날 나는 매우 화가 나서 격양돼 있었다. 좋은 말이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첫 말을 내뱉은 뒤부터 큰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동행했던 협회장은 클럽 책임자를 의식해서(권력에 매우 약한 스타일. 평소 클럽 행정책임자 앞에서 눈치를 많이 살핌)인지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자는 식으로 나를 말렸다. 상황적으로 내 편을 들어야할 협회장이 오히려 반대편에 입장에서 변호하듯 나오니 흥분은 최고조에 올라갔다.
내 말이 모두 끝나자 클럽 측 책임자는 “알겠다. 그렇게 해라. 대신 측면에 비상구를 하나 만들어라. 정문은 개관식날 VIP가 입장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이후에는 폐쇄하고 비상구를 사용하는게 어떻겠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이라 그저 헛웃음 밖에 안 나왔다. 또 다시 흥분됐다. “태권장에 VIP는 우리나라나 이 나라 대통령, 주지사가 아니라 수련생이다. 또한 태권장의 주인은 태권도 수련생이 될 것이다”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 “다시 한 번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공사를 방해하면 공사를 중단하겠다. 이곳이 아니라도 부지를 제공하겠다는 클럽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공사 시작 전부터 일에 협조를 잘 해주지 않아 제2의 부지를 물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와도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동행했던 협회장이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책임자가 그런 이유는 따른 게 아니다. 돈을 달라는 표시다. 이집션은 내가 잘 안다. 그러니 돈을 조금 찔러주면 앞으로 협조를 잘 할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우리가 무상으로 도장을 지어주는데 무슨 뒤로 돈을 줄 수 있느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원기관 최고 책임자가 그럴 수 있느냐. 믿을 수 없다. 그러더라도 절대 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정말 돈을 원해서 그런 거라면 이 나라 사법기관에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협회장은 내 말 뜻을 이해한 줄 알았더니 “돈을 준 사실은 누구도 모르게 하겠다. 돈을 안주면 앞으로 일에 계속 방해가 될 것이다”고 재차 어이없는 요구를 해왔다.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기 위해 이날 자정 클럽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격앙된 목소리로 상황을 이야기하자 그는 “책임자가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신경 쓰지 말고 원하는 대로 공사를 진행해 달라”고 했다. 지난 번 부지 변경 때문에 공사가 중단 될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흥분을 가라앉게 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참으로 예기치 못한 일들로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문화의 차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서 내 스트레스는 쌓여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오늘이 마지막이거니 하고 위안을 삼았다. 과연 이게 끝일까? (다음편에 계속)
* 아스완(Aswan) :아스완은 이집트 최남단 도시로 이집트 나일강의 시작점으로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다.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1천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인구 120만명의 주도이다. 세계 문화유산 아부심벨(람세스2세)과 이시스신전 등 유명 관광지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지이다. 또한 세계 최대규모의 하이댐이 1971년 건립돼 관개용수, 수력발전 등과 나일강 범람을 막고 있다. 태권도는 2006년 뒤늦께 보급이 시작되었지만, 매년 끊임없이 수련생이 늘어나고 있어 태권도장 건립을 계기로 이집트 지방 태권도의 메카로 부상을 꿈꾸고 있다.
으히히(^^) 이렇게 반가울쭐이야;;; 엊그제 아스완에 갔다 지금은 룩소르에 있는 배낭족인데요. 이분들 필라신전에서 뵙고 신기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신지 몰랐네요 정말~ 이날 이분들 인기 짱이셨어요^0^ 같이 사진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ㅡ,ㅡ 챙피해서 못찍은게 아쉽네요===
태마시스 운영자 한혜진 입니다. 이집트에서는 ‘해니’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현재 이집트 아스완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봉사활동 중입니다. 이집트에 온 지 어느덧 17개월이 됐네요. 한국 갈 날도 이제 8개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현지에 잘 적응하고 편해야 할 텐데,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름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 큰일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공과는 무관한 건축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지 수련생들에게 실내 훈련장을 마련해주기 위해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KOICA) 현장사업으로 태권도장 건축 사업이 얼마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에 온 후부터 현장사업 진행 하게 된 계기, 앞으로 진행과정을 연재할까 합니다. <해니의 파란만장한 태권도장 건축기>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십시오. -운영자 주-
Story 1 - 이집트 정착, 그리고 태권도 프로젝트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KOICA) 국제협력요원 태권도분야로 이집트에 온지 1년 5개월 됐다. 솔직히 이집트에 오기 전까지 남들에 비해 현지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이집트에 대해서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가 있는 나라라는 정도 밖에 몰랐다. 심지어 이집트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단 한 도 없을 정도로 관심 밖의 나라였다. 그랬던 나라가 이제는 내게 어느 나라보다 친숙하고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다.
이집트는 우리나라와 언어는 물론 종교, 문화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현지 생활을 하면서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도 문화차이로 생활하는데 적지 않은 불편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남들에 비해 황당한 경험도 많이 했다. 훗날 이 경험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현지 적응과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듯하다. 이쯤에서 각설하고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더위를 피해 수련은 자정에 한다.
2008년 6월 9일 설렘을 가득 안고 이집트 땅에 발을 내딛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태권도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온 만큼, 낯선 외국생활이 그다지 외롭고 힘들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수도 카이로에서 1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최남단도시 아스완에서 한국인 혼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외로웠다. 만약 태권도가 아닌 다른 일로 이곳에 왔다면 적응하는데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 이집트에서 생활해야 할 시간은 2년 3개월.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하루가 참으로 길었다. 1년이 지나면서는 처음에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하루가 이제는 일주일이 하루같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아마도 현지에 잘 적응해서 그런듯하다.
앞으로 8개월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활했던 시간보다 떠날 날이 더 짧게 남았다. 그런데 앞으로 할 일은 지난 시간보다 훨씬 많이 남아있다. 그간 현지 경험을 토대로 코이카 현장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한국에서도 해보지 않은 건축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요즘 건축 관련 정보들을 수집해 공부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진행과정과 세부사항들을 숙지하고 있지 못할 경우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혹 업체에서 현지 물정도 모르는 외국인쯤 여겨 견적을 과하게 매기거나, 일을 대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건축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문화의 차이가 큰 나라,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평균 43도 이상의 무더위와 뜨거운 태양이 더 지치게 했다. 현지에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할 상대조차 없어 때론 문화적 고립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역시 태권도였다.
우리와 문화의 차이가 큰 나라지만 태권도복을 입은 사람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많았다. 우선 종주국에서 온 태권도 사범이라는 사실 자체로 그들은 부족함이 있어도 눈을 감아주고, 매사에 진심을 다해 대해줬다. 앞에서나 뒤에서는 늘 한결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준 그들과 나와 사이는 절대적인 신뢰가 쌓여가고 있다.
아스완 지역 태권도 수련에 대해서는 이 전에 가끔 포스팅을 한 바 있다.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하는 지역 수련생들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권도 사범으로 온 내가 역으로 그들에게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현지 수련생들의 태권도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발차기 연습을 위해 손수 제작한 백.
아스완에서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지도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한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태권도복 조차 갖추지 못한 수련생들이 대부분. 그나마 도복 형식을 갖췄다고 해도 가라테 도복이었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하는 도복을 구입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부담이 큰 것이다. 그 흔하디흔한 미트(발차기 타케트)마저 없다.
다른 훈련장비 역시 수도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것을 가져다 사용하거나, 손수 제작해 사용한다. 더구나 마땅한 수련장조차 없어 빈 공터, 축구장 등에서 수련한다. 공터에는 유리조각과 돌멩이들이 즐비하다. 이런 곳에서 맨발로 수련하다보니 부상이 잦다. 면 포대에 흙을 집어넣어 핸드볼 골대에 매단 백을 차는 모습을 처음보고 놀랍기까지 했다.
환경이 아무리 나쁜들 수련생들은 활기차게 태권도를 즐기며 수련한다. 그저 태권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하지만 지역 태권도 활성화를 위한 지도자 배출과 우수선수 배출을 위해서는 현 상태로는 한계가 있다.
내게 태권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늘 고민했다. 코이카 봉사단원은 <현장사업 프로젝트>로 활동 기관에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거나 물품을 지원 할 수 있다.
태권도 분야는 대부분 활동 지역 및 기관에 부족한 훈련 장비를 지원한다.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쓸 만한 훈련장비 조차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장비 지원은 절실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급한 마음에 장비 지원을 계획했다. 그러나 그 보다 앞서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훈련장비 보다 마땅한 수련 공간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했다.
마땅한 훈련장이 없어 축구장 관중석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수개월의 고민 끝내 아스완에 태권도 전용 훈련장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말도 잘 통하지 않은 낯선 땅에 체육관을 지을 수 있을까도 걱정도 됐다. 결심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어떻게든 지을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이미 선 상태라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이집트 in 태권도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이야기]
이집트 내 한인사범 현황 - 노승옥 사범, 아랍어 공부하러 갔다 이집트에 첫 태권도 보급
이집트에서 인류 문명이 시작되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태권도가 시작되었다. 이집트 역시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인 사범에 의해 태권도가 보급되었다. 오늘은 역대 이집트에서 활동한 한인 태권도 사범 현황을 살펴본다.
이집트에 첫 태권도가 시작된 것은 1974년. 당시 아랍어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갔던 노승옥 사범에 의해서다. 노 사범은 1978년까지 개인자격으로 한국인으로 최초로 이집트에 태권도를 보급했다. 초석을 다진 노 사범은 휴가차 고국에 방문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집트는 1978년 국가 태권도협회를 구성했다. 이듬해에는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입하게 된다. 이후 우리나라 정부에서 이집트에 정식으로 태권도 사범을 파견하기 시작했다(이를 정부파견 태권도 사범이라 칭한다).
초대 정부파견 태권도 사범은 김승주 사범이다.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파견되어 1981년까지 현지에 태권도 기틀을 닦았다. 이어 정성홍 사범(안전기획부 파견)이 바통을 이어받아 1984년까지 지도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때까지만 해도 현 국가정보원에서 태권도 사범을 파견했다. 태권도 지도 업무 이외 현지 정세 등도 함께 조사해 본국에 보고했다.
84년부터는 외교통상부(당시 외무부)에서 해외 태권도 정파사범 업무를 담당했다. 그 해 대한체육회에 근무하던 정기영 사범이 자원하여 이집트에 파견됐다. 이어 86년 임한수 사범이 추가 파견됐다. 두 한인 태권도 사범이 주축이 되어 이집트 태권도는 급성장하게 된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하여 각종 국제대회에서 줄곧 상위에 입상하는 등 큰 성과를 이뤄냈다. 오늘날 이집트가 세계 태권도 강국으로 거듭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임한수 사범은 이집트 최고 엘리트인 경찰대학에서 태권도를 정규과목으로 채택해 전교생을 지도했다.]
정기영 사범(1984~1998)과 임한수 사범(1986~2007)은 모두 현지에서 20년 넘게 활동한 후 정년퇴임했다. 정기영 사범은 퇴임 이후 이집트 현지에서 개인 태권도장 운영과 품새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다. 임한수 사범은 2007년 임기종료 후 코이카 시니어 봉사단원으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태권도를 통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후 코이카 해외봉사단을 통해 한인 사범 파견이 줄을 잇고 있다. 임권배 사범(2005~2006)은 1년간 알렉산드리아에서 봉사 활동했다. 정형주 사범(2007~2009.10, 2년) 역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는 10월까지 봉사 활동을 하게 된다. 한혜진 사범(2008~2010, 7, 2년 3개월)은 한국 사범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집트 최남단 지역인 아스완에 파견되어, 중부이남 지역의 클럽 지도자 교육 및 양성과 수련생 교육을 하고 있다.
한편, 2008 베이징올림픽 태권도대표팀에 김상천 사범(경민대 태권도외교과 교수)이 2년 여간 감독을 맡은 바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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